경순왕릉과 고랑포구
011년 8월 28일(일요일)
연천군 고랑포리에 있는 경순왕릉
신라 56대 경순왕은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
왕위에 오를 당시 후백제, 고려,
통일신라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신라는 후백제 견훤의
잦은 침략으로 영토가 날로
줄어들었고 지방 호족들의 활 거로
국가기능이 마비되는 상태여서
무고한 백성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막고자
고려 왕건(王建)에게 넘겨준 후
왕위에서 물러나 태조 왕건의
큰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여 97세에
개성 유화 궁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라의 여러 왕릉 가운데
경주지역을 벗어난 유일한
왕릉으로 고랑포 나루터
뒤편에 모셔졌습니다.
경순왕이 세상을 떴다는 비보를
접한 신라 유민 수만 명이
시신을 경주로 모시고자 시신을
상여에 모시고 개성 도성을
떠나고 있었는데
고려 조정에서 놀라
시신을 도성 백리 밖을 나갈 수
없게 하여 고랑포 나루를
넘지 못하고 장단부 고랑포리
성거산에 모시고 고려조정에서
시호를 경순(敬順)이라 하고
왕의 예로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160년이 지난 영조 23년 후손들이
왕릉 주변에서 지석(誌石)과
신도비(神道碑)를 발견하였는데
한국전쟁 때 다시 유실되었던
것을 1973년 이곳을 수색 중이던
육군 보병사단에서 발견하여
국가사적으로 지정하고 정비하였습니다.
경순왕의 성은 경주 김(金)씨이고
이름은 부(傅)입니다.
경순왕릉과 신도비
*고랑포구*
가운데 고랑포와 윗 고랑포 사이에 있는
임진강 나루터로 적성면 장좌리와
연결되어 한국전쟁 전까지
임진강에서 가장 번창했던
포구로 주변에 대규모의 저잣거리와
화신백화점이 자리 잡고 있어
고랑포 상권 형성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서해안에서 조류를 타고 임진강을
거슬러 올라온 조기, 새우젓
소금배들이 장단의
특산물 콩, 땔감, 곡물을 교역하였고
교통이 편리한 지리적 조건으로
경기북부지역 농특산물의
집하장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은 집중호우 때
북한으로부터 목함지뢰가
흘러온 것으로 판단되어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서
아름다운 강의 풍경은
멀리서만 봐야 했습니다.
목함지뢰가 흘러 들어와
출입금지입니다.
옛날 화려했던 저잣거리
바로 아래가 포구
지금은 조용한 공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