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이천,양평에서

여주 여강길

손빠공 2010. 2. 1. 13:43

010년 1월 31일(일요일) 

상리 사거리 영월루에 주차

찻길에서 왼쪽 강변 유원지로  

황포돛대를 지나 둑길 끝에서 

표시가 없어 강 아래로 내려갔는데

  

4 대강 살리기 공사가 진행 중인   

이곳 배낭을 메고곡괭이를 든  

수석 채집가들이 많습니다.  

이호 대교에서 둑 위로 올라갑니다.    

   

1951년 남한강 도하 작전을

지휘하다가 고압 전기선에 헬리콥터가   

충돌하여 전사했다는 

미육군 소장 브라이언트 에드워드

무어 장군의 전적비가 있고

 

마을입구 사거리에서 직진

고목이 멋진 부라우나루터에는

쇠 문으로 닫혀 있어 

우만리 나루터로 갑니다.   

 

우만리 마을 입구에서  

나루터를 찾지 못해 리본 따라  

갔더니 남한강 교가 나옵니다.

 

길을 몰라 다리를 건넜더니

교각 아래에 리본이 하나 있었고  

다음 표시가 없습니다.

(여강길 3코스 리본이었나 봅니다.)  

 

둑길과 논길을 따라 신륵사 쪽으로 

가면서 힘들면 택시를 탈

생각이었는데  차는

잘 다니지 않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대순진리회

본관을 지나  

 

사거리 목아 박물관 앞에서

버스를 탔고 여인교 지나 내렸고

시간이 남아 명성 황후 생가까지  

갔다가  돌아오는데 

5시간 걸렸습니다.

 

한강은 공사 중이고 찻길을 

많이 걸어 코스가 좋지 않다는

생각을 했는데 공사가 끝나고 잘 

정리되면 다시 도전해 보겠습니다.  

 

차로 막혀 못 봤던 이정표 돌아와서 

조선 시대 여주 관아 정문으로 사용하던

영월루는 1925년 현 위치로 옮기면서

기좌제일루에서 영월루(迎月樓)로 바꿨고 

여주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18세기말 

  건물로 추정되는 누각입니다.

보물 제91호 여주 창리 3층 석탑과

보물 제92호 여주 하리 3층 석탑

오른쪽 여주 창리 3층 석탑은 

여주 내과 수원 절터에서

이곳으로 옮겨 왔고 1층 사리공에서

고려 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동제여래입상이 발견되었고

고려시대 것으로 보이는 보물 제92호

여주 하리 3층 석탑은 1958년 하리

옛 절터에서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공덕비가 많고

상리 3거리에서  

강변 유원지로 들어가면

강변 유원지 황포 돛대

둑길 따라

이길로 내려왔는데

자갈밭을 걸어가는데 수석 채집가들이 

많았고 이곳은 멸종 위기에 있는 담양

쑥부쟁이 군락지였다고 합니다.

이호 대교를 지나 둑으로 

공사 중 강 건너 대순진리회

미 육군 소장 브라이언트 에드워드

무어 장군의 전적비

놀이터와 느티나무 사거리에서 왼쪽                                                        

부라우 나루터로

부라우 나루터

 

 

 

남한강 교가 보입니다.  

 

이 길을 지나 찻길로

표시가 없어 리본만 따라갔는데

남한강 교를 건너게 되었고

철새들이 있는 남한강

다리 끝에서 모든 표시가 없어졌습니다.

(보이는 리본은 여강 3길 리본인 듯)

교각 밑을 지나 이호 대교 쪽으로 

맞은편은 부라우 나루터

찻길에서 다시 표시판을 만나

대순진리회 본관 

규모가 대단합니다.

사랑하는 까닭을 아십니까?

목아 박물관은 중요 무형 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 목아 박찬수가 전통

목조각의 전승과 발전을 위해 세웠는데

박찬수 씨는 단원 예술제 불교미술대전을

거쳐 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습니다.

이곳에는 보물 제1144호 예념미타도량  

참법 1145호 묘법연화경 1146호

대방광불 화엄경과 정원본 제24권을

비롯해서 유물 약 6,000여 점을 

보관 전시하고 있습니다.

버스 타고 여인교 지나 내렸습니다.

오후 시간이 남아 명성 황후 생가로  

 

*명성황후(明成皇后  生家)*

명성황후(明成皇后  生家)   

 고종 황제의 비 명성 황후가 태어나 

8세까지 살던 집 1687년 인현 왕후의

아버지 민유중의 묘를 관리를 위한 

묘막으로 건립 당시 안채만 남아있었고  

행랑채 사랑채 별당 등은 복원된 것

 숙종의 장인으로 인현왕후의 아버지이며 

 명성황후의 6대조 할아버지 이시고

신도비는 묘로 가는 길목에 세워져

임금이나 고관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라고 합니다.

 명성황후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명성황후 탄강 구리 비(誕降舊里碑)                                      

                                                              명성황후 순국 숭모비

명성황후는 개화기에 개혁을 추진하던 중

1895년 10월 8일 새벽 경복궁에

있는 건청궁 내 옥화루에서 일본

낭인들에 의해 시해당하였습니다.

명성황후의 애국에 대한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추모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