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년 4월 6일(목요일)
장길리 낚시공원을 나와서
이곳은 019년 4월 부산 가던 길에
들렸던 곳입니다.
장기 읍성은 고려 현종 2년
동쪽은 왜적을
북쪽은 여진족을 방어하기
위해 토성을 지었는데
조선 세종 21년에 석성으로
다시 고쳐 쌓았습니다.
장기는 조선시대
단일 현 지역으로는 가장 많은
이들이 유배를 온 곳이라고 합니다.
태조 1년 설장수를 시작으로
149 차례에 걸쳐 220여 명이
유배를 왔는데
우암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도 이곳 장기에
머물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지역민과
교류하고 지역 선비들을
교육했다고 합니다.
성내에는 장기향교와
동헌 터가 남아 있는데
동헌은 면사무소 안으로
이전하였다고 합니다.
장기 초교 쪽
019년 왔을 때 성이 무너진 곳이 많았는데
보수, 수리하여 쌓았습니다.
장기향교는 조선 태조 7년 장기면 마현리
교동에 건립된 것을 1922년 수리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겼습니다.
우암의 배소였던 오조 전의 집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기 초교와 우암이 심었다는
330년 된 은행나무와 동헌은 면사무소에 있습니다.
우암 송시열선생과 다산 정약용선생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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